김승구 X Frames Magazine
FOOD FOR THOUGHT: 사회를 위에서 바라보기 — 김승구의 내러티브 풍경
김승구의 사진은 멀리서 바라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깊이 인간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모이고, 적응하고, 공존하는지를 위에서 관찰한다. 4×5 카메라를 사용한 느린 제작 방식 속에서, 그의 이미지는 일상의 패턴과 집단적 행동의 의미를 드러낸다.
그의 대표작 Better Days는 한국의 공공 공간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신뢰, 시민적 참여, 그리고 공동체를 묶는 문화적 기억에 대한 성찰이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작업의 사유, 그를 지탱하는 엄격한 방식, 그리고 사진이 세계를 묘사하는 동시에 다시 상상하게 만드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Tomasz Trzebiatowski:
승구 씨와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쁩니다. 저는 얼마 전 스위스의 한 서점에서 Better Days를 발견했는데, 컨셉과 이미지 모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사진으로 이끄나요? 작업할 때 무엇을 찾고 있나요?
김승구:
저에게 사진의 힘은 현실을 기록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관점을 통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조각난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그것이 또 다른 층위의 현실을 상상하도록 해주지요. 사진은 근대적 조형미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현상을 포스트모던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비판, 기록과 해석—그 둘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사진을 개인성과 동시대성을 모두 반영하는 서사적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Tomasz Trzebiatowski:
Better Days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한국 사회의 어떤 점을 탐구하고 싶었고, 그 생각을 어떻게 사진으로 번역했나요?
김승구:
한국에서 느껴지는 ‘공동체 기반의 신뢰’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어디에나 그런 신뢰가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힘이 특히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 뿌리는 두레·품앗이 같은 농경사회의 상부상조 문화, 그리고 충과 효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에서 찾을 수 있지요. 근대 이후—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 저항, 급격한 경제성장, 민주화—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와 희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경험들이 시민적 주체성을 만들었습니다. 불의에 맞서고, 자기 역할을 다하고, 빠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문화. 저는 그 공동체 의식과 시민성의 결합이 한국이 코로나19나 최근의 정치적 위기들에 대응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회는 개인의 고립된 능력보다, 공유된 신뢰의 결에 의해 지탱된다고 믿습니다. Better Days는 그 신뢰의 결을 묘사하는 작업입니다.
Tomasz Trzebiatowski:
시리즈는 높은 시점, 패턴 속의 군중 등 독특한 비주얼을 갖고 있습니다. 촬영은 어려웠나요?
김승구: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날씨, 접근성, 허가, 예산—모두 중요하죠. 저는 주로 옥상, 언덕, 다리 같은 곳에서 작업합니다. 너무 가까워서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큰 패턴을 보여줄 만큼은 높은 곳이 필요합니다. 가끔 “언젠가 고소작업차를 살 수 있겠지”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고 합니다.
Tomasz Trzebiatowski:
사용한 카메라는 무엇인가요?
김승구:
린호프 마스터 테크니카 4×5, 그리고 ISO 400 시트 필름입니다.
Tomasz Trzebiatowski:
왜 굳이 아날로그 대형 포맷을 고수하나요?
김승구:
첫째, 과정이 사진가의 태도를 만듭니다. 촬영—현상—스캔—편집의 사이클이 제 일상 전체에 스며들죠. 집에서는 사진을 리뷰하고, 밖에서는 눈앞의 장면이 가진 의미를 계속 생각합니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둘째, 디지털의 즉각적인 확인 기능은 표현을 평준화했고, 누구나 사진가가 되는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아날로그는 그 즉시성을 거부합니다. 셔터를 누른 뒤 결과를 볼 수 없으니 더 신중해야 하고 직관에 의존해야 하죠. 그 ‘시간차’가 자신감을 키우고 스타일 형성에도 도움이 됩니다.
셋째, 아날로그는 감정적입니다. 기대, 불안, 기쁨, 실망. 필름 홀더를 장전하며 장면을 그립니다. 큰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날씨와 하루의 조건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고요. 조건이 맞지 않으면 다음 해 다시 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최종 인화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 네거티브를 처음 볼 때의 감정을 더 강하게 만들죠.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은 장면의 기록일 뿐 아니라, 물리적·심리적 과정의 결괍니다.
물론 저는 모든 형태의 사진을 사랑합니다. 비은염, 필름, 디지털—다 좋습니다. 다만 사진가에게는 하나의 특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파편을 다시 조합해 의미를 전달하고, 누군가가 다르게 보게 만들거나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도록 돕는 능력입니다.
Tomasz Trzebiatowski:
대단한 헌신입니다. 큰 카메라, 긴 이동, 반복된 방문. 책에는 몇 장이 실렸나요?
김승구:
49장입니다.
Tomasz Trzebiatowski:
그 결과물을 얻기 위해 얼마나 촬영했나요?
김승구:
약 14년 동안 작업했습니다. 필름이 얼마나 되는지 셀 수도 없어요. 책을 위해 먼저 약 100장으로 줄이고, 다시 추려서 최종 49장이 됐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수백 장의 프레임이 있습니다—당연히 강약의 차이는 있고요.
Tomasz Trzebiatowski:
표지 사진 이야기부터 해보죠. 서울 근교의 한옥마을 옆 공공 수영장 장면. 촬영이 어려웠나요?
김승구:
예. 사람들은 카메라에 민감할 수 있어 최대한 멀리 떨어져 높이를 찾았습니다. 세 번 방문했어요. 2014년 처음 갔을 때는 청소부 두 명만 있어서 사진이 되지 않았죠. 다시 갔다가, 2017년에야 상상하던 장면을 얻었습니다.
Tomasz Trzebiatowski:
또 다른 사진—철책 너머 군중을 보고 있는 아버지와 딸. 오래 기다렸다고 했죠?
김승구:
세 시간 넘게 기다렸습니다. 4×5는 필름 홀더를 끼우면 화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미리 구도 잡고 메모리에 의존해야 합니다. 정확한 앞 공간에 누군가 들어오기를 끝없이 기다렸어요. 결국 아버지와 딸이 나타나 공을 차기 시작했고—바로 그 장면이었습니다.
Tomasz Trzebiatowski:
어떤 장면은 기묘하게 질서정연해 보입니다. 마치 축소 모형 같기도 하고요. COVID 이야기를 언급했지만, 시리즈는 팬데믹 이전에 시작된 것이죠?
김승구:
맞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 수영장 사진은 코로나 이전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이 공공 공간—특히 서울 한강처럼 넓은 곳—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비슷한 패턴이 보였어요. 그 공명은 분명 존재합니다. 비록 사진 자체는 팬데믹 이전부터 시작됐지만요.
Tomasz Trzebiatowski:
초기 작업 중 하나인 ‘밤섬’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그곳으로 이끌었나요?
김승구:
밤섬은 서울 한가운데 있지만 접근이 금지된 곳입니다. 1968년 개발 과정에서 일부가 채석됐고, 이후 자연이 스스로 복원됐죠. 저는 그 섬을 ‘생태도시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그 자연 속에서 서울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시장에게 2년간 편지를 보내 허가를 받았고, 혼자 노를 저어 들어가 촬영했습니다. 나중엔 서울에서 전시도 했는데, 대부분 들어갈 수 없는 장소라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Tomasz Trzebiatowski:
그리고 ‘진경산수(Jingyeong Sansu)’는 어떤 작업인가요?
김승구:
전통과 현대가 도시에서 어떻게 섞이는지 보는 작업입니다. 많은 고급 아파트 단지들은 풍수적 이유로 금강산, 설악산 같은 성산(聖山)의 축소 모형을 만들죠. 우습고 아이러니하지만, 동시에 현대적 숭고함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을 단순한 키치로 보지 않습니다. 경제적·물리적 공간에 영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드러나 있으니까요. 그 긴장이 흥미롭습니다.
Tomasz Trzebiatowski: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는데, 어떤 기준으로 매주 무엇을 찍을지 결정하나요?
김승구:
날씨, 계절,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강가에 바람이 강하면 Riverside를 찍고, 흐리면 Better Days에 좋지요. 꽃이 피면 진경산수를 찍으러 아파트 단지로 갑니다. 아날로그는 느리기 때문에 같은 장소를 계속 방문해야 합니다. 장기적인 작업이 제게는 필수예요.
Tomasz Trzebiatowski:
지금까지 책은 몇 권인가요?
김승구:
두 권입니다. 첫 번째는 밤섬, 두 번째가 Better Days입니다.
Tomasz Trzebiatowski:
승구 씨, 감사합니다. 깊은 사유와 엄격한 방식, 그리고 인상적인 이미지들. FRAMES Magazine에서 작업을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김승구: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계속 공부하고, 계속 찍겠습니다.
- Tomasz Trzebiatowski